봄의 그늘에서, 지나간 시절의 너에게.
그 애가 청라에서 보낼 지루한 유배는 아무리 길어도 1년이다.
해를 지나 내년 봄이 올 때까지, 시간을 아무리 더 갉아 내도 우리의 끝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다시 헤어질 봄의 그늘 같은 것이다. 그 봄이 제 등 뒤편에나 남긴 그림자였다. 어쩌면 나는 내년에도 청라를 떠나지 못하고 이 그늘에 남아 떠나는 널 바라보겠지만.
그래서 내 그늘진 땅은 그 봄이 다 지날 때까지도 겨울이겠지만.
한때의 주말. 칸막이 책상 아래에서 우리가 잡았던 손. 문제집 안에 끼워져 있던 그 애의 쪽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담아 내게 건네던 그 애. 깨끗한 교복 셔츠의 섬유 린스 냄새. 내 캔커피를 한 입씩 뺏어 마시며 장난스레 웃던 얼굴.
아, 그 웃는 얼굴.
죄다 지겹다는 듯 잔뜩 찌푸린 낯으로 있다가도 날 보면 일시에 소년처럼 말개지는 얼굴이 좋았다.
콧등을 설핏 찡그리고, 시원하게 휜 입매로 웃던 그 남자애.
나중에 서울에 가면 항상 저와 함께 있자던, 그 치기 어린 남자애의 목소리.
나는 한때 박우경에게 내 삶을 다 내어 주고, 그 애의 삶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차라리 전부 종속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애의 모든 것을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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