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하, 기억을 읽는 여인[단행본]

설하, 기억을 읽는 여인 완결

“기억을 그려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손을 주셔야 기억을 읽지요.”
피의 여인, 혈비의 저주로 물든 비운의 나라 연주국.
사람들의 기억을 그려주며 살던 설하는 누가 봐도 고귀한 신분인 류서의 옷자락을 덥석 붙잡고 말았다.
달갑지 않은 표정인 그에게 설하는 기억을 읽는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일 뿐.
그러한 류서의 노골적인 조롱은 설하를 전의에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보란 듯이 기억을 읽어내서 이 오만한 도령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설하는 굳은 결심을 했다.
하지만 그와 맞잡은 손을 타고 설하에게 흘러온 것은 분명 이 나라 왕의 기억….
“어… 어찌….”
어찌 이 도령이 왕인 것이야? 이 나라, 연주국의 왕이 왜 이런 곳에….
설하의 떨리는 몸이 류서의 앞에서 뒤늦게 납작 엎드러졌다.
그러나 왕인 류서가 그녀에게 원한 것은…
“너는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뱉어진 류서의 단호한 말.
전하는 제게 무엇을 원하시며, 왜 저를 곁에 두시려는 겝니까?
턱 끝까지 차오른 물음을 설하는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녀에겐 우선, 꼭 해내야만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끝내 감추어진 류서의 진심,
‘너는 내가 궁금하지도 않은 것이냐? 그동안 나를 그리워하지도 않았어?’
용기 내어 묻지 못하는 왕의 마음은 속절없이 타들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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