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을 품은 몸으로 감히, 내게서 도망을 쳤다?”
석은 소화의 깡마른 어깨를 그러쥐었다.
소화는 왕세자의 아이를 가진 채로 그에게서 도망쳤다.
그녀에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열흘도 되지 않아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세손이라뇨, 오해십니다. 저하.”
흉통이 일만큼 그리웠던 얼굴을 마주하니,
이것은 다행일까.
아니면 불행의 시작일까.
“이제 더는 저하의 곁에 머물 수 없는 몸입니다. 차라리 죽여 주시옵소서.”
뱉어낸 거짓은 석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언제나 다정하고 선하기만 하던 그의 눈에 일순, 깊은 원망과 증오가 일렁거렸다.
서늘한 냉기에 소화는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움켜쥐었는데.
“그래, 죽여주마.”
“……!”
“다만,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온 후 네 소원대로 죽여줄 것이다. 그때까진.”
왕세자는 아랫배를 움켜쥔 그녀의 마른 손목을 옥죄었다.
그러곤 소화를 휙, 당겨 그녀의 귓가에 낮은 음성으로 뇌까렸다.
“닥치고 내 옆에서 죽은 듯이 살아, 소화야.”
유독 비가 잦게 내리는 봄이었다.
《왕세자의 아이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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