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을 위해 묵묵히 전념하는 충직한 호위대장 반후.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주군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불량한 수하.
몰락한 주군을 도피시키는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나면….
반후는 완벽히 자유로워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군이란 놈은 복수를 외치며 원수의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반후는 지긋지긋해하면서도 그 뒤를 쫓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마주한 남자 비영.
반후가 몸담았던 곳을 짓밟던 침입자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피해야 하는데 자꾸만 시선이 가던 기이한 남자.
‘철저히 주인을 위해 키워진, 바로 나와 같은 존재.’
적인 게 분명한 그를 볼 때마다 반후는 아득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리고 누구에게건 무심한 비영이 자신의 말에만 다르게 반응할 때.
반후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수하로서가 아닌 본연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
“그때….”
비영과는 달리 평범한 머리 색을 가진 날 알아볼 리 없는데, 비영은 날 보았다.
달리 목적을 가지고 본 것도 아니다. 차운단과 연결해서 탐색하는 눈도 아니었고, 도련님의 행방과 연관시켜 계산하는 눈도 아니었다. 사룡의 개를 본 것도, 도련님의 수하를 본 것도 아닌, 그저….
“나를 봤지?”
생각하고 뱉은 말이 아닌지라, 말을 한 나 자신도 뭘 묻는 건지 모를 그 질문에 비영은 사나운 기세로 고개를 바로 하여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먼저였다.”
“……?”
항상 무심하고 서늘하던 비영의 음성이 사납게,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가 날 봤다.”
완전히 어두워진 사위 속에서도 비영의 검은 눈은 선명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도…. 그다음에도…. 그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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