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장마 전후> 간토대지진 이후 1920년대 후반, 도쿄 긴자 거리에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난다. 남자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곳에서 맘껏 즐긴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카페 여급 기미에의 등장은 일대 사건이다. 기미에는 남성의 성적 대상에만 머물지 않고 주체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삶을 헤쳐 나간다. 눈앞에 그림을 그리듯 도쿄의 모습을 세밀히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나가이 가후(永井荷風)의 작품이다.
향락이 경제에 우선하는 카페 여급, 기미에
간토 대지진 이후 도쿄의 모습은 급격히 변모한다. 긴자 거리에 유곽, 사창굴, 마치아이,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남자들은 호색이 널리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이곳들을 들락거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들 앞에 본능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문란하지만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다. 기미에다. 기미에는 카페 ‘돈 후안’의 여급이지만 자신의 성욕을 드러내는 데 한 치의 거리낌도 없다. 자기 자신을 위한 “향락이 경제에 우선”하는 것이다. 기미에는 남자들에게 휘둘리지도 않을뿐더러 휘두를 생각도 없다. 남자 때문에 울고불고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열심히 벌어 먹여야 할 식구도 없으니 돈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에게 대들다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폐인이 되어 나타난 과거 은인을 하룻밤 동안 정성을 다해 위로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입체적 인물의 탄생이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눈앞에 그리듯 묘사한 작가, 나가이 가후
≪설국≫을 영어로 번역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큰 공헌을 한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 Seidensticker, 1921∼2007)는 이 책의 작가 나가이 가후를 "일본 작가 중에서 가장 친근감을 느끼고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는 작가"로 꼽았다. 그는 “가후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도쿄, 특히나 동북쪽 일대를 다니노라면 늘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라고 술회하며 “가후가 걸었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에 젖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나가이 가후라고 하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나막신 차림으로 도쿄의 거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도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작가였다. 도쿄의 모습을 일기에 기록하는 것은 물론, 스케치를 하고 카메라로 찍으며 꼼꼼히 취재했다. 이 책 ≪장마 전후≫에 그런 그의 진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도쿄의 당시 모습을 눈앞에 펼치듯 세밀하게 묘사해 독자를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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