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난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데 돌아오는 아이도 있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집으로.
“나흘 동안 이 작은 마을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정갈한 문체와 깊이 있는 묘사로 시대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생의 날카로운 순간들을 꼼꼼히 수집해온 소설가 이현수의 세번째 장편소설 『나흘』이 출간되었다. 충북 영동 출신인 그는 이 장편소설에서 그동안 애써 말하지 않았던 고향의 아픈 과거를 펼쳐놓는다.
1950년 7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양민 300여 명이 사살되었다. 당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당한 피난민들은 철교에서 뛰어내려 노근리 쌍굴로 숨었으나 미군은 굴다리 앞 야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쌍굴을 빠져나오는 양민을 차례로 쏘아 죽였다. 바로 한국전쟁 중 벌어진 뼈아프고 비참한 역사적 참극인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현수는 이 사건을 단순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참혹함만으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심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지루한 전쟁서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은 이현수의 소설이 아닐 것이다. 마치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듯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푸진 사투리, 가끔은 정겹게 벌어지는 우습고 재미있는 상황들을 통해 우리는 감춰져 있던, 혹은 감춰왔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며 이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내시가의 자잘한 일상부터 황간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동학 혁명을 지나, 몰락하는 조선왕조와 한국전쟁에까지 다다른다. 이현수는 이토록 커다란 역사적 사실들을 소설 속에 어색하지 않도록 오밀조밀하게 배치하여 휴전 60주년인 올봄,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으나 아무렇지 않게 잊히고 있는 사실들을 집중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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