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을 읽는다> 작가의 이름에서 문학상의 이름이 된 세 사람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은 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이름이다. 일본의 양대 문학상이라고 하는 이 두 상은 각각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나오키 산주고의 이름을 딴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서 수상작 중 많은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을 말할 때는 소설가인 동시에 문예춘추사의 설립자이자 두 문학상의 창시자인 기쿠치 간을 빼 놓을 수 없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나오키 산주고, 기쿠치 간은 문학의 길을 함께 걸은 동지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깊었다.
그러나 이 세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 수상작에 비하여 작가들 자신의 작품은 그리 많이 읽히는 편이 아니다. 특히 세 사람의 작품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책은 거의 없었다. 이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오키 산주고, 기쿠치 간의 작품 중 눈길을 끄는 단편 소설을 골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수록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가 늘어뜨린 거미줄을 잡고 지옥에서 벗어나려 한 악인의 최후를 그린 <거미줄>, 여자가 남편의 눈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강간당한 사건에 대한 목격자들의 엇갈린 진술을 다룬 <덤불 속>, 지진으로 들보에 깔린 아내의 고통을 보다 못해 살해하고 만 남편의 심경을 묘사한 <의혹>, 어느 무사가 이복동생에게 살해당하자 가신과 아들이 무사의 원수를 갚는 과정을 그린 <소마의 복수>, 병든 로봇 제작 기사가 자신이 죽은 후 자기 대신으로 삼을 로봇을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로봇과 침대의 무게>,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가난한 삶을 결코 비관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묘사한 <가난 1기, 2기 3기 - 내 영락의 기록>, 천부적 재능을 지닌 친구가 작가로 성공하는 모습을 질투하며, 작가지망생인 주인공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무명작가의 일기>, 죽은 뒤 원하던 극락에 가서 사별한 남편과 재회했지만 영원히 이어지는 극락의 평온한 생활에 지쳐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극락> 등 여덟 편이다.
부록으로 아쿠타가와 상, 나오키 상, 기쿠치 간 상을 간략히 소개하고 국내에서 출간된 수상작 목록도 함께 실었다.
*책 속 한 구절
당연히 나는 아내의 최후를 슬퍼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동료에게 다정한 위로의 말을 듣고는 남들 앞에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린 일조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진이 났을 때 내가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만은 묘하게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습니다.
“산 채로 불태워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제 손으로 직접 죽였습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해서 당장 감옥에 갈 리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한층 더 나를 동정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말을 꺼내려고만 하면 금세 목이 콱 막히면서 혓바닥이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의혹> 중에서
“난 영혼의 신비를 믿어.”
“영혼?”
“로봇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놈은 당신에게 복수할 거야.”
“저 로봇이…….”
“그래.”
“어떻게 복수하죠?”
“죽이지.”
부인은 말없이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끈질긴 사랑에 증오와 경멸을 느꼈다.
- 나오키 산주고 <로봇과 침대의 무게> 중에서
문학에 뜻을 둔 젊은이들은 흔히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는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나도 그런 경우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런 생각은 정말 하기 싫지만, 젊은 시절 문학의 꿈을 불태우며 문단에서 유명해질 날만을 고대하다가 결국 오랜 세월 지나도록 무명으로 묻히는 것만큼 쓸쓸한 일도 없다. 나도 그런 부류가 아닐까. 다른 분야에 뜻을 둔 사람은 재능이 있다고 조금 착각해도 그럭저럭 속여 가며 살 수 있다. 재력이나 혈연이 부족한 능력을 어느 정도 채워주니까. 하지만 예술에 뜻을 둔 사람이 스스로 재능을 타고났다고 착각하는 일은 치명적인 실수다. 이 세계에 부족한 능력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 기쿠치 간 <무명작가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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