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남자>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함정과 놀라운 결말
도덕과 휴머니티를 후천적으로 학습한 추리 천재의 활약상
여자 친구 해미의 등쌀에 증권 회사 아르바이트 중이던 진구는 상사 민서의 뒷조사를 하게 된다. 민서가 바람을 피운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내 성희가 불륜의 증거를 찾아달라고 정식으로 의뢰한 것. 심부름센터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진구지만 이번 일은 영 꺼림칙하다. 상냥하고 매너 좋기로 소문난 민서와, 작은 일에도 발끈하고 목소리부터 높이는 성희의 부조화야말로 파경의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감청으로 민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성희는 별거 중인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달라 요구하지만 진구가 발견한 것은 차갑게 식은 민서의 시체뿐이다. 살해 현장에 발을 들여놓은 진구는 즉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영장심문에서 기지를 발휘, 자유의 몸이 된다. 곧 다시 보게 될 거라는 경찰의 협박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민서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민서가 남몰래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과 성희의 의부증이 만들어낸 환상인 줄로만 알았던 내연녀의 등장으로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중?단편 연작소설 《순서의 문제》에서 평범하지 않은 도덕관념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진구는 파트타임이지만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등 일견 사회 질서에 동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범죄 현장의 증거를 조작하고, 처벌받지 않도록 교묘히 위조한 경찰공무증으로 사람을 속이는 등 천연덕스럽게 적법한 범위 내에서 거짓을 일삼는 건 여전하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그동안 독자에게 인정받은 작가의 장기, 즉 정교하고 독창적인 트릭을 소설 곳곳에 적절히 배치하고 있으면서도 인물 간의 갈등과 그들의 심리 변화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이 새롭다.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이는 결국 한 명도 없다는 군중 속의 고독과, 나약한 본성을 타인에게 들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가면 뒤에 숨어버린 현대인이 사건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추리문학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거짓 중 단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는 한국형 추리소설의 부활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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