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

해후

<해후> 해후(邂逅)
마지막으로 라디오의 지하선을 비끄러매놓고 나니, 그럭저럭 대강 다 정돈은 된 것 같았다.
책장과 책상과 이불 봇짐에, 트렁크니 행담 등속을 말고도, 양복장이야 사진틀이야 족자야 라디오 세트야, 하숙 홀아비의 세간 치고는 꽤 부푼 세간이었다. 그것을 주섬주섬 뒤범벅으로 떠싣고 와서는, 전대로 다시 챙긴다, 적당히 벌여놓는다 하느라니, 언제나 이사를 할 적이면 그러하듯이, 한동안 매달려서 골몰해야 했다.
잠착하여 시간과 더불어 오래도록 잊었던 담배를 비로소 푸욱신 붙여 물고 맛있이 내뿜으면서, 방 한가운데에 가 우뚝 선 채, 휘휘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칸반이라지만 집 칸살이 커서 웬만한 이칸보다도 나았다. 웃목으로 책장과 양복장을 들여세우고, 머리맡으로 책상을 놓고, 뒷벽 중간쯤다가 행담과 트렁크를 포개서 이부자리를 올려놓고 했어도, 홀몸 거처엔 별반 옹색치 않을 만큼 방은 넓었다.
반자, 도배, 장판 일습이 집주름 영감과 주인집 마나님 말따나 파리똥 한 점 앉지 않고 정갈 했다. 여름을 치른 벽이라도, 빈대피는 물론 곰팡이 슨 자죽도 없었다.
십상 잘 되었다고 다시금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그러자 방안이 별안간 화안히 밝아졌다. 돌려다보니, 서향인 듯싶은 앞 쌍창으로 마침 끄물거리던 구름이 벗어진 모양, 햇볕이 가득 들여쬐었다. 장차 명년이나 가면 여름이 더울는지는 몰라도, 당장 이 가을과 겨울 동안 해가 잘 들겠어서 또한 신통하고 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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