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묻은 편지 몇 쪽> 피묻은 편지 몇 쪽
마산(馬山)에 온 지도 벌써 두 주일이 넘었읍니다. 서울서 마산을 동경할 적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산이었는지요!
그러난 이 마산에 딱 와서 보니까 동경할 적에 그 아름다운 마산은 아니요, 환멸과 섬섬함을 주는 쓸쓸한 마산이었나이다. 나는 남들이 두고두고 몇 번씩 되짚어 말하여 온 조선 사람의 쇠퇴라든지 우리의 몰락을 일일이 들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선 안에서 다소간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 보고 느낀 바를 나도 보고 느끼었다 하면 더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병의 차도는 아직 같아서는 알 수가 없읍니다. 열도가 오르내리는 것이나 피를 뱉는 것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나 저녁으로 산보를 하는 것이 나의 일과입니다.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이 없는 이곳은 나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유쾌히 하여 주는 이가 없읍니다. 도리어 고적함과 답답함은 차디찬 얼음으로 나의 생명을 저려놓는 듯할 뿐입니다. 형님이 소개하여 주신 이군(李君)은 날마다 한 번씩 찾아와 줍니다. 어떤 날은 함께 바닷가로 산보도 나가는 일이 있고, 어떤 때는 저녁 늦게 같이 놀다가 자고 가는 날도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퍽 친절히 하여 줍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여 줍니다. 어떠한 때는 거짓말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게까지 그는 열정적이요, 진실하고 충실하게 나의 일을 보아줍니다. 만일 그가 없었다 하면 나는 당장에 서울로 뛰어갔을는지도 알 수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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