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물> 폐물(廢物)
때는 천구백이십사년이 마지막 가는, 눈 날리고 바람 부는 섣달 그믐밤었다.
나는 열한 점이나 거진 다 되었을 무렵에서 겨우 석간(夕刊) 배달을 마치고서 머리에서 발등까지 함부로 덮힌 눈을 모자를 벗어 툭툭 털며 종각 모퉁이를 나섰다.
지금 와서는 생각만 하여도 치가 떨릴 만치 몹시도 차운 밤이었건만 그때의 나는 김이 무럭무럭 날 듯한 더운 땀을 쳐 흘렸던 것이었다. 두렵건대 이것의 직접 체험자가 아닌 독자(讀者)로서는 이에 대하여 좀 상상하기에 부족한 혐의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리 석간 배달이 늦다고 할지라도 여섯 점이나 혹 일곱 점이면 끝이 나겠지만 다 아는 바와 같이 내일은 새해의 첫 달이다. 그러므로 신문 페이지 수는 여느 때의 삼 배나 늘어서 사 페이지 일 매였던 것이 오늘에 한해서는 십이 페이지 장 수로는 석 장이나 된다.
이것을 신문사 자체로서는 그의 체면상으로 보든지 신문정책상으로 보든지 또는 전례에 의하여서라든지 그렇게 안 할 수도 없다고 하겠지만 판에 박힌듯한 그 인원을 가지고서 이만한 것을 만들어 내자면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시간도 안 걸릴 수가 없는 것이라, 그 사이에서 죽는 이는 사원 이하 직공과 배달부들이다.
나는 비교적 배달구역이 좁으니만치 신문부수도 백사오십부에 지나지 않았다만 오늘밤만은 이것의 세 목, 즉 사백오십여 매다. 그러니 나같이 약한 체질로서야 견디기 힘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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