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사랑
물속같이 고요한 밤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은 곱게 닦아논 유리면처럼 정결하여 보이고 서편 쪽 관암봉 어깨에는 버들잎을 오려 붙인 듯 초생달이 위태롭게 걸려 바람이 불면 금시에 한들한들 떨어질 것만 같다.
물결도 ── 바다 물결도 이 밤만은 깊은 꿈속에 침적된 듯 숨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속에서 인호와 남순이는 그들도 온갖 잡념에서 침정되어 그림자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모래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만 움직이는 것이란 멀리 알섬에서 깜박이는 등댓불이다.
만은 그것도 금시에 꺼지려고 가물거리는 새벽 등불처럼 힘없어 보인다.
둘은 시간이라든지 세상사 같은 것은 말짱하게 생각 속에서 씻어버리고 어느때까지든지 한모양으로 희미하게 깜박이는 등댓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도 인제는 관암봉 너머로 다 기울어졌고 천지는 수묵색으로 자욱히 어두워 들며 더 한층 고요해진다.
남순이는 비로소 깊은 꿈에서 깨어난 듯 살며시 인호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호, 인젠 들어갈까?"
말할 수 없이 애수가 서린 말끝에는 나직한 한숨까지 흘러 나온다.
소년은 아무말도 없이 그대로 어두운 해변을 내다보고 있다가 풀기 없이 슬며시 일어선다.
웬일인지 꼭 다물었던 그의 입에서도 한숨이 흐른다. 그 모양에 남순이는 다시 한번 한숨을 지은 후 저고리섶을 살짝 여며놓으며 치마기슭을 가벼이 털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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