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녀의 소묘

B녀의 소묘

B녀의 소묘(素描)
「신동아」32호, 1934년 6월
사위
「산가」, 1949년
ㄷ씨 행장기(行狀記)
「문예」 15호, 1953년 2월

“기왕 올 테면 나 있을 제 오게. 뭔, 그렇게 어색해할 거야 있는가? 오래간만에 친구 찾아오는 셈 치면 그만이지. 하기야 그런 일이 없었다기로니 친구 찾아 강남도 간다는데 친구 찾아 천리쯤 오기로서니 그게 그리 망발될게야 없잖은가?”
이러한 편지를 받고 나니 그도 그럼직했다. 지난 가을부터 “갑네, 갑네.”하고도 초라니 대상 물리듯 미뤄온 데는 물론 15원이라는 차비가 그의 생활로 보아 엄두가 안 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벌써 여러 번째 A가 한번 놀러 오라고 졸라대다시피 해도 “응응.” 코대답만 해오던 그로서, 너를 기다리는 여성이 있다고 한다고 신이 나서 달려간다는 것도 쑥스러워 솔깃하면서도 이때껏 미뤄온 것이다.
“뭘, 가보게나그려. 오래간만에 친구도 만나보것다. 청초한 미인이 기다리것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런 중에도 정성스런 애독자렷다…”
훈이가 올라왔다가 A의 편지를 보고는 이렇게 충동이었다. 그때도 귀가 솔깃하게 들리는 것을 꿀꺽 참았다.
훈이 말마따나 여러 해 만에 만나는 친구요, 거기다가 자기의 작품을 모조리 읽은 한 여성이 기다린다는 것이 제가 쓴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그만 두고라도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작품을 감상할 만한 여성이라면 첫째 자기의 작품 같은 것에 정력을 허비하지 않을 게고 그동안에 쓴 것을 모아둔 스크랩을 꺼내어 이삼십 개 되는 그 작품들을 읽던 때의 그 여인의 심경을 상상해보다가 얼굴이 화끈한 적까지 있으면서도 그 여성을 한번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A하구두 오래간만이구, H에 찾아가면 한둘쯤은 반색할 사람도 있는 터고, 하기야 서울서 구나 시골 가서 구나 같은 놈이야 별수가 있나…”
그는 이렇게 이번 여행을 합리화시켜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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