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선집2> 가을바람이 보통벌 넓은 들 무르익은 벼이삭을 건드리며 논과 논 밭과 밭을 스쳐서 구불구불 넘어오다가 들 복판을 줄 긋고 남북으로 달아나는 철도와 부딪치어 언덕 위에 심은 백양목 가지 위에서 흩어졌다. 뒤를 이어 마치 해변의 물결과 같이 곡식 위에서 춤추며 다시금 또 다시금 가을바람은 불리어왔다.
하늘은 파란 물을 지른 듯이 구름 한 점 없고 잠자리같이 보이는 비행기 한 쌍이 기자림 위에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열두시의 기적이 난 지도 이십 분이나 지났다. 신작로 옆에 ‘평화 고무공장’ 하고 쓴 붉은 굴뚝을 바라보며 벤또통을 누렇게 되어가는 잔디판 위에 놓고 관수는 마꼬를 한 개 붙여서 입에다 물었다. 점심을 먹고 물도 안 마신 판이라 담배가 입에 달았다. 한번 힘껏 빨아서 후 하고 내뿜으며 그대로 언덕을 등지고 네 활개를 폈다. 눈은 광막한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파랗게 점점 희미하여져서 없어지는 담뱃 내가 얼굴 위에 너울거리다 풀숲을 스쳐서 오는 바람을 따라 그대로 없어지곤 하였다. 그는 연거푸 그것을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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