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동백꽃>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문학 단편소설2> 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첫 문장은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쪼이었다”
입니다.
이 첫 문장에서 독자는 ‘어? 오늘도... 또... 막... 뭐지?’ 하고 내심 눈을 크게 뜹니다. 은유적으로 살포시 드러난 작품 전체의 연관성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닭싸움과 수탉이라는 중요한 소재를 건져내는 독자도 있을 법합니다.
닭싸움은 주인공 두 사람이 펼치게 될 사랑싸움의 대리전으로 전개가 될 것입니다. 수탉 두 마리에는 주인공 두 사람의 사회적 입장, 신분 차이, 사랑싸움의 주도권 등을 가늠하게 하는 재미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작품을 이해하며 즐겁게 읽으려면 의식적으로 파악해 두어도 좋을 내용입니다만, 그런 수고로움 없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수탉 두 마리가 서로 얽혀 날카로운 부리로 공격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순간적으로 푸드덕거리는 날개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덩치 큰 점순이네 수탉에게 당한 작고 못생긴 우리 수탉은 볏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 모습을 보는 나는 “내 대강이에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버쩍 난다.”고 합니다.
꼼수를 부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진검승부! 서열다툼을 하는 수탉 두 마리의 닭싸움과 사춘기 사랑싸움이 발산하는 건강한 에너지에 어느새 우리 마음이 열립니다.
단지 서너 문단 읽었을 뿐이지만 닭싸움에 져서 분통이 터지는 주인공 ‘나’와 닭싸움을 붙인 ‘점순이’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한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가며 읽게 됩니다.
이렇게 독자의 마음을 확 잡아당기면서 조금씩 풀어내는 김유정의 이야기 솜씨에 우리는 80년 전 강원도 산골에서 벌어지는 티격태격 사랑싸움에 몰입하고 맙니다.
남의 눈을 피해 구운 감자 세 알을 슬쩍 내미는 점순이의 호의를 눈치 없이 무참하게 거절하는 ‘나’를 보는 독자는 안타까우면서도 참 재미납니다. 그래 놓고 ‘나’는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뗍니다. 김유정 문학의 해학이 돋보이는 순간이지요.
만약 판소리처럼 관객이 흥겹게 동참하는 무대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하고 목청을 돋우어 연애코치에 나서고 싶어질 것만 같습니다.
김유정 문학이 신 나고 맛깔나는 비결은 또 있습니다.
정겨운 토박이말, 적절한 토속어, 양념 같은 비속어, 친근한 입말체 서술 등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는 것! 이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니다. 몇 년 전 수능 국어 문제로도 출제된 적 있는 ‘쌩이질한창 바쁠 때에 쓸데없는 일로 남을 귀찮게 구는 짓’을 비롯하여 감때사나운, 하비다, 싱둥겅둥, 걱실걱실, 얼김에, 맥을 보다, 치빼다 등등.
이대로 사장되는 이런 어휘들이 못내 아까워 몇 번이고 입 안에서 그 맛을 음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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