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 최서해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그믐밤 ; 최서해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 <본문 글>
삼돌의 정신은 점점 현실과 멀어졌다. 흐릿한 기분에 싸여서 한 걸음 한 걸음 으슥하기도 하고 그저 훤한 것 같기도 한 데로 끌려 갔다.
수수깡 울타리가 그의 눈앞을 지나고 꺼뭇한 살창이 꿈속같이 뵈는 것은 자기집 같기도 하나, 커단 나무가 군데군데 어른거리고 퍼런 보리밭이 뵈는 것은 이웃 최돌네 집 사랑뜰 같기도 하고, 전번에 갔던 뫼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어딘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그 때문에 기분이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가 앉았는지 섰는지도 의식치 못 하였으며 밤인지 낮인지도 몰랐다.
그의 눈은 그저 김 오른 거울같이 모든 것을 멀겋게 비칠 뿐이었다.
이때 그의 정신을 흔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부터 저편에서 슬금슬금 기어 오는 커단 머리[頭]였다. 첨에는 저편에 수수깡 울타리 같기도 하고 짚더미 같기도 한 어둑한 구석에서 뭉긋이 내밀더니 점점 가까와질수록 흰 바탕 누런 점이 어른거리는 목 배떼기며 검푸른 비늘이 번쩍거리는 머리며, 똑 빼진 동그란 눈이며, 끝이 두 가닥 된 바늘 같은 혀를 훌쩍훌쩍 하는 것이 그리 빠르지도 않게 슬금슬금 배밀이해 오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등에는 그도 모르게 찬 땀이 흘렀다. 그는 뛰려고 하였다. 다리는 누가 꽉 잡는 듯이 펼 수 없고 팔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무서운 기다란 짐승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슬금슬금 기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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