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단편집 1> 여자에게서 온 편지 ──. 실로 영식이게는 생후에 처음이다.
첫 번 한 번 읽고는 읽고도 무슨 소린지 의미가 분명치 못한 것 같아서 다시 한 차례 읽고야 겨우 알았다.
그리고는 숨기지 못할 미소를 입 가에 띄우고 그 발그스름한 편지가 가늘고 작게 쓰여진 글자를 한 자 한 줄씩 글자 모양과 줄바른 것을 주의하여 보며 문면에 나타난 것보다 더한 만족을 거기서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겉봉을 다시 집어 들고 어느 곳 몇 번지라고 어떻게 썼는가, 최영식 무엇이라고 썼는가를 보았다. 물론 시내 ××동 ○○번지라고 틀림없이 쓰고 최영식 밑에는 씨(氏)자가 삐지게 똑똑히 씌어 있었다.
氏[씨], 氏[씨], 殿[전]자와 氏[씨]자와 그 쓰는 구별이 어떠한 것인가. 殿[전]자는 보통 편지에 으레 통상 쓰는 것이고(우리가일찍이 쓰지 않던 것을 남의 바람에 멋 모르고 흔히 쓰지만), 氏[씨]자는 좀 친한 이에게 다정하게 쓰는 것인가. 즉, 여자가 남자에게(사모하는 남자에게) 쓰는 친한 다정한 글자가 아닌가. 그렇다 하면 그가 그 구별을 생각하고 氏[씨]라고 쓴 것일까 혹은 그대로 쓰는 대로 별다른 생각없이 쓴 것일까…….
무엇인지 그 殿[전]자 쓸 곳에 氏[씨]자를 쓴 그 氏[씨]자에 그의 친근하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견디지 못하겠다. 그러나 영식이는 그 氏[씨]자 좌측 옆에 친전(親展)이라고 쓴 두 글자를 보고 빙그레하였다. 전일에 친구에게서 온 것 중에 그리 대단치도 아니한 편지에도 친전이라고 특서한 것은 종종 보아서 친전이란 그것이 그리 특유한 것이 아닌 줄로 생각하던 터인데 지금 생후 처음 여자에게서 온 편지에 쓰인친전은 무언지 중대한 비밀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두 글자를 보고 그와 자기와의 사이가 퍽 친근할 뿐 아니라 아주 밀접한 것같이 느껴져서 아까 생각하던 氏[씨]자는 퍽 친한 터에 쓰는 글자로 쓴 것이라고 단정해 버려 만족한 기쁨이 전신에 넘쳐서 세상이 졸지에 이상(理想)의 평화, 행복의 세상이 된 것 같았다.
그는 편지를 들어 눈을 스르르 감으며 코와 입에다 대었다. 향긋한 향내가 가느름한 하게 코에 맡아진다. 그는 또 빙그레하고입은 다문 채로 웃었다. 혼자 몸으로는 지탱치 못할 희열과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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