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선: 옥랑사 (채만식 42)> 마침내 그날로 선용(張[장]先用)은 강보의 불명(不名)을 안아다 아내 서씨에게 부탁한 후 표연히 다시 집을 나가 산으로 들어갔다. 진정 이번은 입산(入山)이었다. 노루재(獐峴[장현]) 산막(山幕)에서 멀지 아니한 백학동의 백련암으로 가, 머리 깎고 혜광(惠光)이라는 법명으로 중이 된 것이었다.
그것이 광무(光武) 4년 경자(庚子) — 서기 1900년…… 선용의 나이 서른한 살 적이었다.
이보다 10년을 앞서 고종(高宗) 28년 신묘(辛卯). 섣달 열나흗날 밤 달이 휘영청 밝고 이윽고 깊은 밤이었다.
과실로, 고기로, 생선으로, 그 밖에 여러 가지 제사장 보기한 것을 멱서리에 넣어 멜빵 걸어 지고 양손에 갈라 들기도 하고 선용은 빠른 걸음을 더욱 급히 하면서 곰의고개(熊峴[웅현])를 넘고 있었다. 내일이 부친의 제사였고 그 제사장 보기를 하여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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