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선: 생명의 유희 (채만식 04)

한국근대문학선: 생명의 유희 (채만식 04)

<한국근대문학선: 생명의 유희 (채만식 04)> 늦은 봄 첫여름의 지리한 해가 오정이 훨씬 겹도록 K는 자리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그가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대신 아침에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서 항용 아홉시나 열시 전에는 일어나지를 아니하지만, 그렇다고 오정이 넘도록 잠을 잔 적은 없었다. (하기야 그는 잠을 잔다는 것보다도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만 았았을 따름이다. 보통때라도 누구나 오정이 지나도록 드러누웠으면 시장기가 들 터인데, 하물며 그 안날 아침부터 꼬박 내리 굶은 그가 일찌기 일어나서 밥을 먹을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만일 집안에 돈이 되었든지 쌀이 되었든지 생겨서 밥을 지었으면 알뜰한 그의 어머니가 부랴부랴 나와서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였을 터인데, 도무지 그러한 소식도 없고, 안에서도 밥을 짓는 듯한 기척이 없어 고요하기 때문에 그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민두룸히 드러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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