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 환상문학 단편선 : 오를라 · 경련 · 괴물들의 어머니 · 크리스마스 이야기 · 늑대 | 바톤핑크 고딕문학 총서 004> 모파상의 환상 단편 5편을 묶었다.
「오를라」
후대에 많은 영감을 준 모파상의 단편이다. 흔히 세 단계 또는 세 버전 다시 말해 서간문 형식인 1885년판, 액자 소설인 1886년판, 일기 형식의 1887년판으로 알려져 있다. 형식과 분량뿐 아니라 공포의 대상인 초자연적인 존재를 형상화하는 묘사의 수준과 양상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은 1887년판 「오를라」다.
일기를 쓰는 화자는 상류층의 독신남, 미지의 존재에 대해 공포를 토로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미지의 존재. 물과 우유만 먹고, 의지력 하나만으로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또 먹이로 만드는 존재.
공포문학의 거장 러브크래프트는 이 작품에 대해 "긴장감을 주는 서술 기법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한데 이어 "행성 사이를 펄럭이며 비행하는" 이 미지의 존재를 크툴루 신화의 확장 기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경련」
모파상 자신의 신경증이 반영된 단편 중 하나로 무덤에서 살아돌아온 딸과 그 기이한 경험을 밝히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괴물들의 어머니」
자식을 팔아서 돈벌이를 하는 비정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마귀라고 불리는 이 여자는 기형아를 낳았다가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돈으로 이 여자를 부추기는 자들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당대 "프릭쇼(freak show)"의 흥행사들이다. 자유자재로 기형아를 낳기 시작하는 여자, 그 비밀은 코르셋에 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
노르망디의 한 작은 마을, 폭설과 혹한으로 적막감이 감돈다. 마을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 것은 악천후만이 아니다. 기묘한 공포감... 급기야 이 공포가 현실화된 사건이 벌어진다. 대장장이의 아내가 길에서 주운 달걀을 먹고 악령에 들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진다. 마을 사제의 구마 의식에도 악령은 물러서지 않는다. 또 한번의 시도, 때마침 크리스마스다. 이번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늑대」
다르빌 후작 집안은 대대로 사냥에 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런데 갑자기 사냥을 금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후작 본인이 직접 밝힌 사건의 중심엔 늑대가 있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 거대한 몸집,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한 교활함과 잔인함. 이 가공할만한 늑대와 인간의 일대 혈전이 벌어진다.
<책 속에서>
5월 8일
얼마나 아름다운 날인가! 나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집 앞 잔디밭에 누워 아침나절을 보냈다. 나는 이 마을이 좋다. 또 여기에 사는 것이 좋다. 내 뿌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이 깊고도 섬세한 뿌리는 조상 대대로 나고 죽은 대지에 인간을 결속시키고, 우리가 생각하고 먹는 것, 관습과 음식, 토속적인 표현과 농부의 독특한 억양, 흙 내음, 마을과 공기 자체에 사람을 결속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이 집을 사랑한다. 창가에서 보이는 센 강은 정원 옆을 흘러 이 집 근처의 저 길 너머로 지나간다. 루앙에서 르 아브르로 흘러가는 저 크고 너른 센 강 여기저기에 보트가 가득하다.
멀리 아래편 왼쪽으로, 뾰족한 고딕풍 종탑 아래 푸른 지붕들이 모여 있는 대도시 루앙이 있다. 대성당의 첨탑 아래 가늘거나 넓은 주물 종탑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종탑들을 가득 채운 종들이 화창한 아침이면 푸른 공기 중으로 아늑한 종소리를 내게 전하는데, 바람이 거세졌다가 잦아지듯 청동의 노래 소리는 때로는 강해지다가 때로는 약해진다.
얼마나 화창한 아침인가! 11시경 파리만 한 크기의 예인선에 이끌려 기다란 선단들이 뱃고동 소리와 함께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내 집 대문 앞을 지나갔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두 척의 영국 스쿠너 선을 따라 브라질의 웅장한 세대박이 돛배가 나타났다. 완벽할 정도로 희고 기막힐 정도로 깨끗하고 눈부셨다. 나는 그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배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5월 12일
며칠 동안 미열이 있다. 몸이 안 좋다. 아니 슬프다.
우리의 행복을 고통으로 확신을 좌절로 만드는 미지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혹자는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 우리가 굴복하는 불가사의한 힘들이 가득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진심으로 노래하고픈 최고의 기분으로 깨어나곤 한다. 왜일까? 물가로 내려가 잠시 걷다가 돌연 비참한 생각이 들어 집에 돌아오곤 한다. 마치 집에서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왜일까? 살갗을 스치는 차가운 전율이 내 신경을 뒤흔들고 내 영혼을 어둡게 물들이는 걸까? 구름의 모양 혹은 하늘의 색조, 또는 주변 사물의 색깔들이 너무도 변화무쌍하게 눈앞을 스쳐가서 마음이 심란해진 것일까? 그걸 누가 알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무심결에 만지는 것, 느낌 없이 다루는 것, 특별한 혐오 없이 접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돌연하고 놀랍도록 우리와 우리의 신체 장기에 불가해한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을 거쳐 우리의 생각과 존재 자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비는 얼마나 심오한가! 우리의 초라한 감각으로는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그것이 아주 작든 거대하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어느 별에 누가 사는지, 물방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볼 수 없다. 공기의 진동을 음표로 전달하는 우리의 귀는 늘 우리를 기만한다. 귀는 요정처럼 움직임을 소음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고, 이 변성은 자연의 소리 없는 움직임을 화음으로 만드는 음악의 동인(動因)이다. 개보다 못한 우리의 후각도 마찬가지다. 포도주의 숙성 기간을 간신히 알아내는 우리의 미각도 그렇다.
아! 다른 기적을 행하는 다른 기관만 우리에게 있었던들,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숱한 새로움이 발견될 것인가!
5월 16일
나는 분명 병들었다! 지난달에는 얼마나 건강했던가! 나는 지금 지독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데, 몸뚱이처럼 마음을 괴롭히는 지독한 신경쇠약에 더 가까운 듯하다. 끊임없이 나를 위협하는 끔찍한 위기감과 재앙 혹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감, 살과 피 속에 숨어든 정체불명의 질병이 언제라도 공격해올 거라는 필연적인 예감에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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