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 아라한 호러 서클 059> 「정화」는 여자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유진)는 돈을 보고 여자와 결혼한다. 시인이고 예술가라지만 어딘지 한참 찌질해 보이는 이 남자는 결혼 전 사귄 옛 연인과 밀회를 즐긴다. 외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줄줄이 대면서도 돈 많은 아내에게 쫓겨날까봐 전전긍긍한다. 여기에 해결사랍시고 외도를 격려하는 간 큰 친구까지 나서면서 사태를 키운다.
<책 속에서>
유진 캐스필리어는 에이겔리테이 카페의 철제 탁자 앞에 앉아서 압생트(회향, 아니스 등의 향료로 만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옮긴이) 잔의 설탕 덩어리에 유리병의 물을 부어 천천히 스며들게 하고 눈금이 새겨진 스푼을 잔에 넣는 동안 묵인하고 있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캐스필리어의 얼굴에서 세상의 홀대를 받는 남자의 불행한 그림자가 스쳤다. 작은 원형 탁자의 맞은편에서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친구 앙리 라쿠르였다. 원래 압생트를 마시는 방법대로 천천히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도, 친구가 직면한 문제를 크게 걱정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기에 어쩌자고 그녀와 결혼한 거야?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
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왜냐고? 좀 더 쉬운 걸 물어봐.’하는 의미였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앙리도 어깨를 으쓱하는 것 외에 별다른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서 두 사람은 각자 나른하게 잔을 비울 뿐이었다.
“생활은 해야 하잖아.” 마침내 캐스필리어가 말했다. “퇴폐적인 시인이라는 게 큰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잖아. 뭐, 미래에 불후의 명성을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압생트나 한 잔씩 할 수밖에. 내가 왜 그녀와 결혼했냐고? 난 환경의 희생자야. 시를 써야 해. 시를 쓰면서 살아야 한다고. 살려면 돈이 있어야지. 돈을 벌기 위해 결혼한 거야. 발도레메는 파리에서 가장 좋은 제과점이잖아. 프랑스인이 시보다 빵을 더 사랑한다고 잘못이라는 거야? 책방보다 그녀의 제과점에 있는 것을 더 원했다고 날 탓하는 거야? 결혼이라는 바보짓을 하지 않고는 그녀와 제과점의 수입을 나눠 가질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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