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실 가는 길> 영화의 서술 기법이 노련한 솜씨로 녹아 있는, 이성준 작가의 첫 작품집.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사실감과 창의적 구성이 돋보이는 이 한 권에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통하고 있는 지형도가 펼쳐져 있다.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굶을과(국문과)’를 선택해 소설을 전공했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작가 이성준이 마침내 인간미 넘치는 소설집을 엮어냈다. 이 소설집을 만들기 이전에 어머니의 지난(至難)한 삶을 형상화한 소설을 진작 준비하고 집필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30년 넘게 완성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의미에서 정리가 더 필요한 그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이 여섯 편의 이야기들을 먼저 들려주게 되었다. 본 경기를 앞두고 시범 경기를 치르는 선수처럼 링 위에 올라 스스로 맷집을 점검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가난한 고아에서 삶을 개척한 어른으로 성장했어도 현실과 불운의 냉대를 피하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며 자기 학대와 신을 향한 저주에까지 사로잡히는 그 남자 (<회복실 가는 길>).
나는 대 바겐세일 광고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조물주는 나를 유리 안에 전시해놓고 저런 광고를 내걸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 인간을 어떻게 저렇게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이지 나는 조물주가 대 바겐세일 한 인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을 숨기고, 교환해주지 않는 조건으로 세일해버린 인간……. 나는 과연 몇 퍼센트나 할인된 인간일까. 50%? 80%?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덤으로 세상에 넘겨버렸을지도 몰랐다. - <회복실 가는 길>
그러나 살아가는 행위로 말미암아 가슴 저밈 증세를 앓고 있을 만큼 유약한 그 남자. 본의 아니게 ‘유복자로, 애비 없는 호로 새끼로,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하는 지질이 궁상으로, 색맹으로 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 살아온 패배감에 정점을 찍게 한 열성 혈액형(RH-)을 갖고 있지만 그 피로 새 생명을 구하게 되는 그 남자(<회복실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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