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실종> 영화의 서술 기법이 노련한 솜씨로 녹아 있는, 이성준 작가의 첫 작품집.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사실감과 창의적 구성이 돋보이는 이 한 권에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통하고 있는 지형도가 펼쳐져 있다.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굶을과(국문과)’를 선택해 소설을 전공했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작가 이성준이 마침내 인간미 넘치는 소설집을 엮어냈다. 이 소설집을 만들기 이전에 어머니의 지난(至難)한 삶을 형상화한 소설을 진작 준비하고 집필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30년 넘게 완성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의미에서 정리가 더 필요한 그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이 여섯 편의 이야기들을 먼저 들려주게 되었다. 본 경기를 앞두고 시범 경기를 치르는 선수처럼 링 위에 올라 스스로 맷집을 점검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황홀한 실종>의 화자는 고3 담임이라는 ‘직업인’으로서 교직과 삶의 목적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대학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의미심장하게도 시화(詩畵) 제의를 받는다. 그 제의는 꿈과 멀어진 채 ‘무능한 현실주의자’로 지내고 있는 그를 자책하게 만드는 한편, 긴 시간 동안 ‘썩히고’ 있던 창작의 욕구에 불을 댕긴다. 그는 ‘굳어버린 손과 머리’로 심란해하며 ‘마른 나무에서 물 짜내듯’ 간신히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그리고 미대 진학에 실패한 후 가난을 물리칠 요량으로 뱃사람이 되어 억척스럽게 살아온 ‘돈벌레’ 친형을 찾아가, 그 시와 한 몸을 이룰 그림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부탁한다. 형만이 동생의 시를, 화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림으로 잘 표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부탁 받은 형이 미완성의 그림을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진다. 형의 그림 속에는 바람을 견디며 바람과 사는, 위태롭고 안타까운 ‘억새’의 몸부림이 들어 있다. 그리고 ‘복수만을 꿈꾸고 있’는 듯이 흉측한 표정으로 일그러진 닭이 노려보고 있다. 화자는, 형이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날개가 퇴화해버린 닭의 현실로 형이 돌아오자, 화자는 그만 허망감과 부끄러움을 느껴버린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실종’을 감행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실종은 탈출이고, 모험이고, 회복이고, 재회이고, 고통이고, 탄생이다. 꿈이 되지 못한 일상, 의 주인공이 되어 살고 있는 존재들의 마음속에서 언제든 겁 없이 꽃을 피울 ‘황홀한 실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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