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그늘> 영화의 서술 기법이 노련한 솜씨로 녹아 있는, 이성준 작가의 첫 작품집.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사실감과 창의적 구성이 돋보이는 이 한 권에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통하고 있는 지형도가 펼쳐져 있다.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굶을과(국문과)’를 선택해 소설을 전공했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작가 이성준이 마침내 인간미 넘치는 소설집을 엮어냈다. 이 소설집을 만들기 이전에 어머니의 지난(至難)한 삶을 형상화한 소설을 진작 준비하고 집필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30년 넘게 완성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의미에서 정리가 더 필요한 그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이 여섯 편의 이야기들을 먼저 들려주게 되었다. 본 경기를 앞두고 시범 경기를 치르는 선수처럼 링 위에 올라 스스로 맷집을 점검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기적인 문명의 세상에서 비껴 있는 몽골을 여행하는 내내 기시감(旣視感)과 마음의 통증에 시달리는 그 남자와 그 여자. 마치 잠언과도 같이, 둥근 ‘무릎’의 상처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그 남자와 그 여자. 그러나 갈망과 망설임과 불온과 두려움이 일으킨 소용돌이 속에서 통과의례처럼 상처를 입고 마는 그 남자와 그 여자. 운명의 소란이 한바탕 지나간 후, 인연의 힘과 기적을 고스란히 체감하며 전생에서 못다 한 사랑까지 뜨겁게 나누는 그 남자와 그 여자 (<인연의 그늘>).
무릎에 그의 입술이 닿는 순간, 아득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숨이 턱 막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칭칭거리던 무릎에 그의 입술이 닿자 뜨거우면서도 묵직한 돌덩이나 쇳덩이가 떨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그 통증은 금방이라도 심장을 멎게 할 것만 같았다. 하지 말라며 그의 머리를 밀어내고, 다리를 빼보려고 힘을 줘도 소용없었다. 그는 꿈적도 않을뿐더러 내가 다리를 빼려 하면 할수록 다리를 더 꽉 잡는 바람에 다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포기하고 그에게 다리를 내맡기자 그는 갑자기 혀를 내밀더니 상처 부위를 두루 훑기 시작했다. 은근하고 조심스레 상처 부위를 확인해 나가는 그의 혀끝에 불기운이 느껴졌고, 나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 <인연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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