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우스꽝스러운 세계를 견디는 농담의 미학, 관조의 철학
마침내 정영문이라는 문학
불안과 권태, 그리고 유머라는 세 가지 질료로 낯설고 견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정영문의 소설집 『꿈』이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로 재출간되었다. 『꿈』은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엮어 2003년에 출간되었던 소설집으로, 1996년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발표한 이래 26년간 꾸준히 이어져 온 정영문 세계관의 초기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귀한 디딤돌 같은 책이다.
정영문의 문학은 가장 근본적인 곳으로부터 출발한다. 생이라는 출발점, 죽음이라는 종착지, 그 사이를 메우는 숱한 시간들을 말할 때 정영문은 각각 권태와 불안, 유머라는 재료를 택했다. 원한 적이 없지만 이미 시작되어 지난하게 계속되는 생은 권태롭고, 모든 생의 종착지는 죽음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 불안이 촉발된다. 그리고 권태와 불안 위에 세워진 기나긴 시간을 견디게 해 주는 유일한 물약이 있다면, 바로 유머다. 정영문의 문장은 생의 본질을 닮아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중얼거리며 권태롭게 이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 휩싸여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불안한 의문 속에 놓여 있다. 그리고 소설 곳곳에, 우리를 무조건적인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힘 빠진 웃음이 있다. 정영문의 소설이 “스스로 우스꽝스러운 짓을 함으로써 이 우스꽝스러운 세계에 참여”하고 있다는 강보원 평론가의 말은, 정영문이 꿰뚫고 있는 삶의 본질과 그 덧없음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식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꿈』을 통해 그의 고유한 문학이 시작되던 초기의 고민들을 다시 들여다보자. 이 책이 각자의 삶의 무게와 질서를 일순간 무너트리거나 뒤바꿀 운명의 열쇠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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