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과 망각을 대가로 귀신에게 남자들의 양기를 바치며 500년을 살아온 윤이연.
남자 사냥을 마치고 골목을 빠져나오려던 순간, 한 남자와 부딪힌다.
“아읏!”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치지 않으셨나요?”
쿵쿵쿵쿵.
이연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벼락을 맞은 듯 온몸에 짜릿한 전기가 흘렀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 남자는, 왜 일까. 왜 맨살이 조금 닿았을 뿐인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다는 걸까.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구애했다.
그 남자가 자신이 죄책감 때문에 오래 후원해 온 피후원자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
“이사님은 어떤 꽃을 좋아하세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저를 예뻐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꽃들 사이에 수줍게 자리 잡은 투박한 토분.
이연은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길쭉하게 이파리만 늘어트린 녀석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봉선화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
“봉선화? 왜요?”
올해 처음 심은 꽃이라서.
하준을 만난 뒤에 심은 꽃이라서.
하준을 만났고, 봉선화를 심었다. 하준을 기다릴 때마다 봉선화를 바라보았고, 하준에 대한 마음이 자랄수록 봉선화도 자랐다.
그래서 평생 특별한 적 없는 꽃이 새삼스레 특별해진 게 아닐까.
강하준, 어쩌면 좋니. 나는 이제 봉선화를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날 것 같은데.
제일 먼저 리뷰를 달아보시겠어요? 첫 리뷰를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