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먹는 입, 혹은 말하는 입
지금, 라면이 왜 중요한가?
확신할 수 없는 일들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픽션들. 이 소설집이 내재한 힘은 그러한 예언의 불가능성과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인 픽션의 힘에서 비롯된다. 소설이 가진 힘을 믿는 자에게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구원이 있으리. 만약 우리에게 ‘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유의미하다면, 이러한 단언은 다름 아닌 ‘현실-없는-현실’이라는 텅 빈 공간들, 즉 작품 속의 ‘W시’로 상징되는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의미 해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표제작인 「라면의 황제」는 ‘불량식품’으로 낙인찍힌 라면이 사라진 시대, 27년간 라면만 먹은 라면의 달인 김기수 씨의 책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촌극이다. ‘흔남/흔녀’의 일상적 사건을 고고학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컨대 작품은 “그는 왜 라면만을 먹기 시작했는가?”와 같은 평범한 물음으로 다가서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가 왜 라면만을 먹지 않을 수 없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이면에 간직하고 있다. 더불어 「지상 최대의 쇼」와 「경이로운 도시」에서 외계인은 지구를 ‘방문’한다. 지구인은 이 외계 생명체의 방문에 꽤 관대한 편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거리와 먹을거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결국 이 사회체계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인정투쟁의 장이 오히려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라면을 마저 먹었다. 외계인들이 지금 당장 떼 지어 내려온다 해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9급 소방공무원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지상 최대의 쇼」)
처음에, 도시 외곽의 버려진 폐교를 깨끗이 수리한 뒤 페인트칠까지 새로 하여 그들을 거주하게 해준 대가로 W시가 외계 난민들에게 요구한 건, 아주 약간의 노동력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생이 게으른 데다 평소 불평불만이 몸에 배어있던 그 가난뱅이 외계인들은, 일이 힘들다는 핑계로 툭하면 근무지를 빠져나가 산속으로 도망치길 거듭했다는 것이다.(「경이로운 도시」)
우리가 알던 외계인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여기에는 온전히 ‘삶-투쟁’으로서의 전 지구적 현실만이 반영되어 있다. 실상 미스터리한 건, 외계인의 정체성이나 그들과의 문명적 대화보가 아니라 철저한 ‘먹고사니즘(먹고사는 문제가 ’지상 최대의 쇼’가 되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가? 즉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입이 먹는 입을 이길 수 있는가? 작가가 던지는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 다시 말해 외계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내재한 문제틀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코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혹자가 이 소설집을 두고, “지금, 왜 라면이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지금, 라면이 중요하지 않을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되받아쳐야 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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