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열흘

서울 열흘

<서울 열흘> 집에서 한 번 다녀가라는 말도 아니 듣고 나는 사릉에 박혀 있었다. 비를 기다려서 모를 내어야 한다는 것이 핑계였으나 사실은 움쭉하기가 싫은 것이었다. 사릉이라고 특별히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없다. 있다면 자라나는 제비 새끼를 바라보는 것, 강아지와 병아리를 보는 것, 새 소리를 듣는 것쯤이었다. 논, 밭은 원체 땅이 좋지 못한 데다가 가물어서 빼빼 말라가는 곡식을 보기가 마음에 괴로왔고 이웃끼리 물싸움으로 으릉거리는 것, 남의 논에 대어 놓은 물을 훔치는 것, 물을 훔쳤대서 욕설을 퍼부으며 논두렁을 끊는것, 농촌의 유모어라기에는 너무 악착스러웠다. 「소서가 내일 모렌데」
하는 것이 농민의 눈에 피를 세우고 염체를 불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 보지락만 왔으면」하고 모여만 앉으면 말하였으나 그 한 보지락이 좀체로 와 주지 아니하였다. 십여 일을 두고 거의 날마다 큰비가 올 듯이 판을 차려놓고는 부슬부슬 몇 방울 떨구다가는 걷어치우는 것이었다. 「하늘에 비가 없어서 못 줄 리도 없으련마는」 사람들은 이런 소리도 하였다. 소서가 낼 모렌데 모는 반 밖에 안 났다. 보리는 흉년이요, 밭곡은 타고 모두 속상하는 일이었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서울을 가기로 하였다. 원체 약한 몸에다가 맹장을 뗀지가 한 달 밖에 안되는 망내딸 정화가 중학에 입학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그도 오학년에서 검정 시험을 보고 들어가자는 것이다. 괜한 욕심이 요 억지 일이다. 그러나 그러기로 정하였으니 하릴없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도리 밖에 없다. 내가 강하게 반대하면 이번 입학을 중지할 수도 있겠 지마는 당자의 재주에 자신도 있거니와 한 해를 얻는다는 것이 욕심이었다.
내가 서울에 발을 들여놓은 날은 훈훈한 바람이 불어서 동대문 밖이 온통 먼지였다. 길가 배추밭에 배추포기들이 검은 먼지를 뒤집어쓴 양이 내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 푹푹 패인 길로 자동차들이 덜컥덜컥하고 수없는 고개를 넘듯이, 달려서 먼지의 연막을 일으켰다. 여자들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외면하고 걸었다. 넝마에 우 넝마가 다 된 전차가 터지도록 사람을 싣고 비틀거리며 달렸다. 동대문 같은 데는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W자형으로 열을 짓고 서고 그 새로는 책과 담배와 사탕을 파는 아이들이 외우고 다녔다. 모두 전에 없던 새 풍경이다. 나는 전차를 탈 생각을 버리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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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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