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이성계 1> 동북 변방의 청년장교에서 조선 왕조의 창업자로...
난세에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한 문체의 김성한 스타일
《조선 태조 이성계》는 김성한이 쓴 첫 역사소설이다. 김성한은 1950년대 <오분간>, <바비도> 등 기법의 파격성과 지적 분위기로 한국 소설의 현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은 작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던 작가다. 그런 그가 10여 년의 공백 끝에 역사소설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처음 내놓은 작품이 《이성계》다.
역사소설에서도 김성한은 처녀작인 《이성계》부터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한 문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였다. 픽션에 기댄 다른 역사소설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그는 생전에 “역사가 나무의 줄기와 큰 가지라면 역사소설은 잎사귀이자 생명을 불어넣는 바람”이라고 역사소설을 대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었다. 광범위하게 수집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라는 큰 줄기에 색채를 더하고 살을 붙이며 학문적 안목으로 재해석하는 김성한 역사소설의 특징은 《왕건》, 《7년전쟁》, 《요하》 등으로 이어지는 이후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이성계와 주변의 명멸하는 인물들을 통해 바라본 조선 창업의 과정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제목 그대로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가 주인공이다. 고려 공민왕 10년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는 무장 시절에서 시작되어 위화도 회군을 거쳐 역성혁명까지 소설의 초점은 태조에게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한 걸음 물러난 태도를 취한다. 주인공 못지않은 비중으로 그의 주변, 그리고 명멸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
특히 첫머리에 등장하는 반란군 박의의 이야기는 역적과 그 역적을 진압하는 새 영웅의 출현이라는 도식을 벗어나 혼란과 변동의 시기에 교차하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김성한 역사소설의 허무주의적 경향이 자주 지적되었던 연유다.
하지만 그렇기에 김성한 역사소설은 수십 년이 지나도 낡지 않은 ‘모더니티’를 가진다. 영웅담 혹은 민중 중심의 역사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섣부른 역사적 판단를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태도가 김성한 역사소설에 대한 저평가를 초래했지만, 거꾸로 지금 그것이 김성한 역사소설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난세를 이끄는 영웅, 난세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본능
그의 역사소설에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군사 관련 묘사의 탁월성은 이미 《이성계》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첫머리가 전투장면 묘사다. 그럼에도 작가는 활을 기막히게 쏘는 이 청년장교를 극적인 영웅담의 주인공으로 쉽사리 포장하지 않는다.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어떻게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운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지, 그 시대를 살아간 다양한 인간군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지난 역사를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직조해 낸다.
마치 코르시카 출신의 나폴레옹이 프랑스 본토로 올라가서 천하를 뒤흔들고 왕위에 오른 것처럼 외인부대 대장과도 같았던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뒤엎고 역성혁명을 일으키리라고 그 누가 상상했을까. 작가가 생전에 말했듯 “우리는 역사소설을 통해 당대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를 함께 돌아볼 수 있을” 터, 우리는 <이성계>를 통해 혼란과 변동의 시기에 자신의 본분을 읽고 시대를 끌고 나가는 지도자의 모습과 더불어 인간 군상의 생존 본능이 빚어내는 비극의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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