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1999년에서 2000년 사이, 한국에선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월남전의 숨은 사연들이 공개되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국군의 일부 부대가 노인과 여자, 아이들뿐인 마을에 들어가 총질을 하고, 수류탄을 터뜨리며, 불을 질러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거다. 이른바 양민 학살 사건, 한 신문사가 베트남으로 날아가 그들의 참상을 취재했고,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는 마을 입구엔 한국군을 저주하는 비석이 서 있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았지만 살아남은 그들도 온전하지 않았다. 총탄과 파편에 팔다리를 잃거나 눈이 먼 사람, 충격으로 정신마저 오락가락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군이 어째서 자신들을 죽였는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렇게 몰살당한 마을은 베트남 중부 지역에만 수십 군데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 한국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군대가 베트남의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를 위해 싸웠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냉전의 시대, 우리처럼 서로 다른 체제의 싸움에 휘말려 고통 받는 그들을 도왔다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껏 우리의 군대가 정의의 십자군이라며 칭송해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고 느낀 순간 혼란은 분노로 바뀌었다. 공산당 빨갱이와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한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거다. 심지어 2001년 여름,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의 국가 주석과 정상 회담 중에,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라고 말했다. 파월 장병 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공산 세력과 싸운 것이 어찌하여 잘못된 것인지를 따졌고, 그들에게 사과한 대통령은 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드러냈다며 비난했다. 또한 사건을 다루었던 방송사에 찾아가 항의 시위를 하고, 1년 넘게 현지의 사정을 취재하던 신문사를 급습하여 오물을 뿌리고 윤전기에 모래를 뿌려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혼란은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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