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단편집>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외상을 경험한 송병수의 소설에는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서 누군가 쓰러져야 했던 전쟁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전쟁 체험의 반영과 전후 사회 현실에 대한 응시는 송병수 소설의 근원을 이룬다. 전쟁이라는 처참하고 급박한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문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의 잔학성과 비인간화보다는 극한상황 속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의식과 감정의 추이에 주목한다.
<쑈리·킴>은 송병수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이다. 작품은 미군기지 근처의 옛 중공군 참호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곳은 미군과 한국인이 공존하며,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 쑈리 킴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따링 누나, 딱부리, 찔뚝이 등과 살아간다. 엠피들이 따링 누나를 데려가고 누나가 모아놓은 돈을 훔쳐 가려던 찔뚝이가 딱부리의 칼에 맞는 순간 쑈리 킴은 무섭고 밉고 걱정스러운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인간 신뢰>는 ‘췌유’라는 중국 인민의용군의 이야기다. 그는 본래 지주의 아들을 보살피던 인물로, 국민당이 쫓겨 가고 공산당 천지가 되었을 때, 인민의 적인 주인집 아들의 도피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자위대에 붙잡힌다. 반동분자란 죄목으로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그는 중국 인민의용군으로 선발되어 전투에 참가하지만 그것을 고된 노역 중 하나로 생각한다. 췌유는 누가 적이고 자신이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전쟁 기계’처럼 한국전쟁에 참가한다. 그러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고, 달아날 기회가 생겼음에도 부상당한 미군 ‘검둥이’를 업고 전장을 걷는다. 자기의 삶을 ‘덤으로 살아온 목숨’이었다고 말하는 췌유. 그런 그가 검둥이의 총부리 앞에서 처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한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삶을 잉여적인 것으로부터 구출해 낸다.
<탈주병>은 이념으로 인해 인간의 진정성이 무시되는 상황을 보여 주고, 역으로 인간애가 요구됨을 환기한다. 박한서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인민군 전사 및 지리산부대원이 되고 나중에는 국군이 된 인물이다. 그는 휴식이 절실한 분대원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임의로 초소를 이탈하게 하고, 분대원들을 대신해 경비를 선다. 분대원들을 대신해 초소를 돌아보는 사이 초소 순찰에 나선 주번 하사관은 경비병이 없자, 분대원들이 적에게 납치되었다고 상부에 보고한다. 그리고 전신이 인민군이자 지리산부대원이었던 박한서를 간첩으로 간주하고 심문한다. 그는 이를 끝까지 부인하고, 대구 육군본부로 후송되는 길에 빨치산 생활을 이탈하듯 탈주한다.
<잔해>의 주인공은 ‘불사의 보라매’라는 별명을 가진 공군 중위 김진호다. 그가 산중에서 죽음의 불안과 극도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사랑한 미애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동료 조종사가 죽었을 때, 누군가가 내뱉은 “하필 조종사의 아내가 된담”이라는 말을 듣는다. ‘공포의 출격과 안도의 귀환과 주색과 뉘우침과 막연한 기대와 막연한 죄의식 속에 나날을 보내던’ 그는 자신을 찾아온 미애에게 아기를 떼어 버리라는 가혹한 말을 던지고 출격한다. 그는 야간 적지 비행 중 피격을 받아 추락할 때 낙하산 탈출을 감행한다. 필사적으로 귀환 작전을 벌이지만 헬리콥터는 폭격을 유도한 동료를 구출한 채 산꼭대기를 떠나 버린다. 그 후 그는 자신이 타고 있었던 무스탕기의 잔해를 발견한다.
<유형인>은 일제 식민지 시대로 소급된 역사적 기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인 김한수는 8·15 해방 당시 이북에 살다가 이남으로 넘어온 사람이다. 그는 이북의 가족을 데리러 38선을 넘었다가 1946년 8월 김일성 암살 미수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시베리아 교화소로 끌려간다. 시베리아 유형 생활에 적응해 러시아 여자 마니샤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1956년 소일통상조약의 영향으로 일본으로 송환된다. 그가 일제 때 학병으로 끌려간 기록 때문에 ‘야폰스키’로 오해되었기 때문이다. 강제로 시작된 시베리아 유형 생활은 이렇게 강제로 끝난다. 일본에 간 한국인 김한수는 유형 생활 중에 익힌 러시아어 실력 덕분에 미군 사령부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일본 여성 ‘후미꼬’와 가정을 꾸리지만,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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