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성 초판본> ≪안의 성≫은 신구 세대 모두가 이해 가능한 자유연애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10년대의 사회에서 자유연애는 가문과 신분을 중시하는 당대 문화적 상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일 수 있지만, 최찬식은 그의 소설 속에서 그것을 이해·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그려낸다. 그의 소설에서 ‘이십 세기 청년’인 김춘식의 자유연애가 구세대에게 허락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학문을 한 인물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사회에서 “양 가문의 세교 전도와 가문 출신, 그리고 그 덕행을 혼인 성립의 요건으로 삼”은 데에 반해서, 최찬식의 소설은 가문보다 인물이라는 요건을 더 중시한다.
김상현은 통학하는 길에서 만난 어떤 여학생의 ‘어여쁜 모습에 반해’ 졸업식 날 쫓아가서, 그 여학생이 박정애라는 것과 오빠 박츈식이 비천한 생선 장수라는 것을 확인하고, 마포 동리 동장 성운경에게 혼담을 주선할 것을 청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김상현이 가문과 위세보다도 그 여학생의 인물과 그 인물의 지식이라는 요소를 결혼 결정의 중요 사항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김상현의 태도를 구세대인 어머니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혼이 가문의 어른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문 어른조차 당사자에게 맡기려는 태도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당대 사회에서 비천한 가문이라도 신학문을 통한 새로운 신분의 상승이 가능함을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나아가 그 만큼 반상의 차별이라는 가문 의식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가문보다 인물을 우선시하는 자유연애 문화는 김상현의 어머니를 비롯한 구세대에게도 소통되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상현의 자유연애란 그가 자신의 삶(연애, 결혼)을 스스로 책임지는 계몽 주체 되기의 양상을 띠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연애를 통해서 결혼한 김상현은 그의 여동생 영자와 이웃 처녀 봉자의 방해로 인해 결혼생활의 위기에 처하고 이혼 문제를 겪게 되는데, 이때 그가 택한 행동은 세계 주유다.
김상현의 주유는, 조선에서 시작해서 중국, 인도,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와 호주와 남양 제도로까지 이어진다. 김상현은 주유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오자마자 자기 가계의 갈등을 해결하는 주체가 된다. 이는 자기 계몽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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