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동인 단편집> 평양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전통 유교사상에 비판적이고 유아독존식 엘리트 의식을 갖추게 된 작가 김동인. 패기만만하게 19세의 나이로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초의 문예 동인지인 ≪창조≫를 만들기까지 했던 작가의 중·단편을 발표 당시의 표기법 그대로 실었다.
김동인의 작품 세계는 ‘모순’이나 ‘이중성’으로 요약된다. 유아독존적인 성격을 지녔음에도 무력감을 느끼는 운명주의자의 처지를 거스르지 못한 점, 이상적으로는 절대적 모성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여성 혐오증을 지닌 점,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면서도 나중에는 대중소설을 집필한 점 등이 그렇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한국 근대문학이 형성되어 가는 미완성의 궤적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약한 자의 슬픔>(1919)은 김동인의 첫 작품이다. 여기서 ‘약한 자’는 ‘강엘니자벳트’다. 신식 교육을 받았으며, 조실부모한 고아다. 그녀는 왜 약한가.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라는 신분이 이미 약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가 의식적으로는 ‘리환’을 사랑하지만 가정교사로 있는 집안의 K 남작에게 겁탈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송사까지 벌였으나 패소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엘니자벳트’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눈뜨게 되고, 자존과 자립에 대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 약한 자임을 앎으로써 비로소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획득한다.
<배따락이>(1921)는 김동인의 소설 중 형식상 완성도가 가장 높다. 한국 근대문학사상 첫 액자소설로, 1인칭 화자 ‘나’가 배따라기를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겉이야기와, 영유 마을의 형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속이야기가 이중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런 액자 구성은 이후 <광염소나타>(1930)나 <광화사(狂畵師)>(1935)에서도 지속적으로 활용된다.
<감자>(1925)는 김동인을 자연주의 계열 작가로 간주하게 하는 작품으로서, 환경결정론적인 시각에서 주인공 복녀의 도덕적 타락을 조명하고 있다. 칠성문 밖의 빈민굴을 무대로 ‘가난’이라고 하는 물질적 조건이 ‘도덕’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어떻게 말살해 가는지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런 비극의 과정을 프로 문학적인 계급의식으로 풀지 않고, 또한 일제강점기 시대였지만 민족의식으로도 풀어내지 않는 개성적 면모를 보여 준다. 단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인간의 삶을 해부한다는 자연주의적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발까락이 닮엇다>(1932)는 방탕한 성생활로 인해 성병에 걸려 생식 불능이 된 남자가 결혼한 후 얻게 된 자식을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심정을 그린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염상섭을 실제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돌아 발표 당시부터 물의를 일으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설 속 M이 자기 자식일 수 없는 자식을 바라보며 ‘발가락이(라도) 닮았다’라고 합리화하는 의식의 메커니즘이다. 실체적 진실이나 현실적 사회와 유리된 채 자기 유폐에 빠진 돈키호테의 희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발까락이 닮엇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돈키호테적 인물이 예술지상주의와 만난 작품이 바로 <광화사>(1935)다. <광염소나타>와 더불어 오스카 와일드류의 예술지상주의적 면모를 보여 준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추한 외모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몇십 년 간 격리되었다가 소경 처녀를 만나 절대미를 완성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그 소녀를 죽이고 자신조차 파멸로 치닫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 예술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김동인의 시각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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