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어삼키는 맛

집어삼키는 맛

그날은 모든 게 하나씩 어긋난 날이었다.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고, 그보다 더 밑바닥일 수도 없던 순간.간절히 바랐던 찰나에 거짓말처럼 나타난 남자.“선택해.”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처럼.등 뒤에서 고요한 유혹이 흘렀다.“5억. 받을래, 말래.”세연은 그가 내민 손을 구원이라고 생각했다.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아주 조금의 숨통만이라도 틀 수 있다면.“대신 나와 얽히게 되면 너한테 피해가 가게 될 수도 있어.”“……할게요. 어떤 방식으로든 갚을게요.”상냥한 경고를 건네던 남자는 근사하게 웃었고,“좋아.”절박한 세연은 그가 건넨 독사과를 기꺼이 집어삼켰다.*5년 후.구조조정이 시작되고, CY그룹 컨트롤타워 핵심부서 기획조정실이 부활한다.새로운 후계자의 화려한 등장. 최재윤 상무이사.그와의 재회는 어쩌면 당연한 순리처럼 예정되어 있었다.그가 건넨 구원, 달콤한 독사과는 복수의 수단이 되어 주는 것.덫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피할 수 없었다.“너는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나랑 죽고 못 사는 척만 하면 돼.”철저히 이용하고, 이용되는 관계.분명 그랬는데.“오늘 밤 너와 난 정신 놓고 짐승처럼 뒹군 거야.”세연의 가슴팍이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쿵, 쿵, 쿵. 심장이 울렸다.이상한 일이다. 분명, 감흥이 없어야 할 텐데.정적이 흘러야 할 남자의 검은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제대로 해야지.”“…….”“그래야 널 선택한 보람이 있지.”남자가 빙그레 웃었다.“안 그래?”어째서.최재윤은 왜 하필 김세연이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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