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순간 알았다. 이곳이 소설 속이라는 것과 그녀가 한 줄짜리 엑스트라라는 것을.
어째선지 다시 살아난 그녀는 결심했다.
원작이고 나발이고, 나부터 살고 보자!
원작 시작 전에 사라지는 악역. 그것도 잔인한 그의 광증이 시한부인 내 약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푸른 안광이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 빛났다.
“죽고 싶은가 보군.”
‘아니요. 살고 싶은데요.’
당장 쓰러질 거 같은 몸.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하아…….”
미쳤다. 미쳤어. 이 남자의 숨결조차 상쾌하다고 하면 너무 변태 같은가.
입가에 흐를 거 같은 침을 슥 닦으며 몽롱한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넘쳐흐르는 광증에, 곧 사라질 악역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잘생긴 외모까지.
응, 합격.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적당히 붙어있다가 집에 돌아가야지.
.
.
.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
냉혹하기만 하던 그가 바뀐 것은 언제부터일까.
두꺼운 철벽은 어디다 버리고 요망하게 굴기 시작했다.
“우리 약혼할까?”
그녀의 손을 들어 올린 그가 그녀의 손바닥 깊이 입 맞추며 말했다.
“왜, 왜 이래요.”
“날 두고 어딜 가려고.”
살짝 고개를 비튼 그가 미소 지었다.
그 야릇한 미소에 혼이 나가버릴 거 같았다.
순식간에 밀착된 몸에 얼굴이 붉어지자 그의 입꼬리가 짓궂게 올라갔다. 당신, 나랑 같은 엑스트라 맞아?
왜 남주처럼 행동해!
그저 치료제인 광증이 필요했을 뿐인데,
원작 시작 전 사라지는 악역과 단단히 엮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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