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약한 악역을 치유해버리면 [독점]

병약한 악역을 치유해버리면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악역의 하녀가 되었다.
모든 감각을 차츰차츰 잃어가다가 소설의 도입부에선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되는 그런 악역.
이 녀석은 결국 흑화해 모국을 멸망시키려다 죽고, 황실의 명부에서 이름까지 지워진다. 그를 지탱했던 가문의 사람들도 몽땅 처형당하고.
하필 악역의 하녀로 빙의해버렸으니 어쩐다…. 이대로라면 나도 죽을 거잖아. 도망치려 해도 소개장 없는 하녀가 가긴 어딜 가?
그래,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주는 거야. 그러면 제국 전체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는 짓은 안 하겠지?
먹, 어, 요.
녹턴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썼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금세 알아들었다.
로스트비프를 찍은 포크를 손에 들려주니, 포크의 무게로 고기의 위치를 가늠해 입술을 벌렸다. 소스를 흘리지 않고 먹으려는 걸까?
귀여워라.
녹턴의 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식기를 치우며 혼잣말을 했다.
“…….”
“…잖…요. 그…니까….”
희미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디아나의 것이라고 판단한 녹턴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그녀의 말을 다 듣게 되면 좋겠다. 그날이 꼭 와주기를.
* * *
“디아나.”
“노…녹턴! 아니, 주인님. 지금 지팡이 없이 걷는 건가요?!”
녹턴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무릎이 덜덜 떨려 발을 절고, 몸은 버거워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아니었으나…. 그는 지팡이를 짚지 않고 디아나의 앞에 섰다.
드디어 그녀에게 닿았다. 그만의 힘으로.
녹턴은 디아나의 무릎에 누워 불쌍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아프지 않은 나는 싫어…?”
“그, 그럴 리가 있어요?”
“그럼 계속 돌봐줘. 발목이 시큰거리고 머리도 아파. 눈앞이 핑핑 돌아서 기운도 없단 말이야.”
“아, 그럼 침대로 옮길 테니 양팔을 조금만 벌려주시겠어요? 누워 있으면 약초액을 달여올게요.”
디아나가 냉큼 소매를 걷어붙이자 녹턴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가 상상했던 것은 그녀와의 즐거운 한때지, 그녀의 노동이 아니었다.
“그건 네가 힘드니까 내가 걸어갈게.”
“……?”
발이 아프고 어지럽다던 녹턴이 갑자기 혼자 걸어서 침대로 갔다.
디아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이거. 왠지 속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녀석이 나으면 다행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드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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