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탐닉

버려진 황녀는 황실을 무너뜨리길 원했다.
하여 추운 겨울 밤, 에스델은 얼음성에 잠들어 있던 푸른 눈의 악마를 깨웠다.
“나를 황제로 만들어 줘.”
아름다운 남자는 기꺼이 계약을 받아들였으니.
새하얀 눈과 얼음, 그리고 짙은 꽃향기에 둘러싸인 악마가 속삭였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해요, 에스델.”
황녀궁의 시종으로 숨어든 악마는 에스델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계모와 이복 오라버니의 학대, 친부의 방관 속에서
죽어가던 에스델을 구원하였으니.
그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인외의 존재를 향한 애정은 보답받을 길이 없다.
악마를 향한 사랑은 칼과 같아서, 어루만지고 핥을수록 상처 입을 뿐이다.
에스델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서 도망치려 하는데…….
***
다정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의 다정함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에스델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러자 부드러운 재촉이 들려왔다.
“에스델.”
시선을 피하는 일조차 허락해 주지 않는 남자가 제안했다.
“키스할까요.”
이번에는 대답해야 했다. 여기서 더 재미없게 굴었다간 그가 흥미를 잃을지도 몰랐다.
“네가 하고 싶다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입술이 맞닿았다. 허리를 낚아채며 밀어붙이는 키스는 거칠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저속한 행위였다.
점점 감각이 끝으로 치닫던 어느 순간, 입술이 떨어졌다.
긴 손가락이 에스델의 입술을 훑었다.
“더한 짓도 하고 싶지만.”
그가 흐트러진 머리 장식을 고쳐 주고,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에스델은 움찔움찔 떨었다.
“기껏 예쁘게 꾸몄는데…….”
진득한 시선이 에스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핥아 내렸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서, 사타엘은 싱긋 미소 지었다.
“망가지면 아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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