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 있는 후작 집안, 펑펑 써도 남을 재물, 반반한 얼굴까지 가진 리디아 에반시.
그녀가 갖지 못한 건 단 하나, 바로 남자 보는 눈.
천한 몸에서 태어난 황자에게 빠져 간쓸개 다 바쳐 황제가 되고 싶단 꿈까지 이뤄줬더니,
집착녀 취급을 하며 자신의 먼 친척 지젤과 바람이 나버렸다.
황제가 된 리처드는 지젤 배 속에 아이를 핑계로 약속했던 황후 자리까지 빼앗는다.
그리하여 리디아는 진정한 집착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줄 결심을 했다.
바로 지젤과 함께 독을 먹고 죽을 계획을 세운 것.
하지만 계획은 실패하고, 하나 남은 가족인 오빠 데본에게까지 외면받은 리디아는 척박하고 열악한 노역장으로 끌려간다.
얼마 뒤, 춥고 열악한 노역장에 닥친 전염병으로 그나마 의지하던 동료들도 모두 죽었다.
리디아 역시 가늘고 하얀 손을 떨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굴었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뺨 한번 세게 쳐주고 싶다.
정신 좀 차리라고.
...그런데, 정말로 기회가 왔다.
지젤의 찻잔에 독을 타던 바로 그 오후, 티타임으로!
리디아는 얼른 뺨부터 후려치고 시작해 보기로 한다.
그녀를 버렸던 리처드와 그녀를 기만한 지젤, 그리고 자신의 목숨으로 거래를 한 데본에게 안겨줄 복수를.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탐내는 제국의 검, 아르센 에디스가 필요하다.
*
“이봐요, 아르센 경.”
리디아는 익숙하게 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르센의 가슴팍을, 감정을 약간 실어서 팍팍 쳤다.
“내 신호 못 봤어요?”
“봤습니다.”
“신호 보내면 안 돼요,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하라고 했잖아요.”
어제는 연기인 줄 몰라서 그랬다 치지만, 오늘은 연기인 걸 알면서도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손발이 안 맞아서야 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겠나, 이 말이다.
“팔이랑 다리 아픈 거, 연기 아니지 않습니까.”
“연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엄살 피울 정도도 아니에요.”
“아픈 건 맞단 말이군요.”
벽이랑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것이, 지난번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대화는 리디아만 잔뜩 놀림 받고 끝났다.
“그러면 뭐, 진짜로 내 다리 주물러 줄 거예요?”
이번엔 리디아가 그를 골려 줄 차례였다. 리디아는 일부러 아르센 쪽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이러면 아르센이 당연히 곤란해하겠지?
리디아는 그가 우물쭈물하면, 앞으로는 약속한 대로 연기나 잘하라고 한 마디 톡 쏘아붙일 셈이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들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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