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하룻밤 정도야.
오늘처럼 거지 같은 날.
세상을 발아래 둔 남자와 키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결혼을 약속한 남자는 바람을 피우고, 오늘 처음 본 남자는 잡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소독내 나는 의사에게 천하의 하태건이라니.
금 간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데 이것만큼 효과적인 게 있을까.
“집중 안 합니까.”
얼굴 위로 입술이 겹쳐졌다.
도발하고, 도발당하고.
그런데 하룻밤이 하룻밤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연락하면 받아요. 피하지 말고.”
“피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해 봐요. 어떻게 되나 나도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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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맛보기처럼 보여 준 힘과 권력이 지나치게 달콤하긴 했다.
하지만 제 것이 될 리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사는 세상이 달랐다.
“백이면 백 그렇게 장담하다가 내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던데, 그쪽은 부디 그런 일 없길 바랍니다.”
“네, 그럴 일 없어요.”
“그래야죠. 만약 그쪽이 먼저 날 찾을 때는 안길 각오쯤은 하고 오는 편이 좋을 겁니다.”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듯 웃음기 하나 없는 음성은 가차 없었다.
“몇 번을 말씀드릴까요. 그럴 일……!”
“잘 새겨들어요.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지 말고.”
차갑게 일갈한 그는 여희를 수 초간 바라본 뒤 싸늘하게 돌아섰다.
달칵.
병실을 빠져나가는 완고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희는 비로소 남자와의 싸움 아닌 싸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다시 볼일도 없을뿐더러 우연히 마주치게 되더라도 조용히 피해 갈 것이다.
전력을 다한 여희는 침대에 걸터앉아 문 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뇌리에 잔상처럼 남은 하태건의 모습이 쉽게 잊힐지는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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