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했다.
“상무님.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상무님 여자 친구…….”
죽어라 모은 엄마의 치료비를 하나뿐인 피붙이가 들고 잠적해 버렸으니,
벼랑 끝에서 떠오른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연기 연습도 하고 뭐든 하겠습니다. 문제없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니까 제가 상무님 선 자리 때 여자 친구 역할 하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매번 사람을 구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그 사람들한테 줄 돈을 나한테 달라고.
일하는 것처럼 서로 원하는 걸 해 주면 되지 않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임 비서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남자의 눈이 평소와는 다르게 번뜩였다.
꼭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것만 같았다.
“난 할 거면 끝까지 하고 싶은데. 그래야 감정 이입도 더 잘 되고.”
남자가 거리를 좁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커다란 손을 들어 압박하듯 작은 턱을 움켜잡았다.
“임 비서, 내가 상사가 아니라 남자일 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이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지만, 떨리는 속을 감추고 당돌하게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뭐든 다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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