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기의 양녀와 신분을 숨긴 귀공자.
이미 끝이 예정된 관계였음에도, 모든 것을 준 탓에 아이를 가졌다.
절박하게 내민 손을 맞잡은 그를 사랑하며 유일한 아내로 함께하려 발버둥 쳤다.
처음부터 농락당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를 지키겠다는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욕심이었던가.
*
윤강은 저를 사랑한 적이 없다.
가난한 상민 계집의 마음이 아니라 그 계집의 배 속에 든 애를 원했던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이었어.’
모든 일이 헛것처럼 느껴졌다. 그를 사랑해서 제 삶을 버리고 따라와, 그의 세상에 함께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허튼짓이었다.
벅찬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데 다리 사이에서 무언가 흘렀다.
“아….”
흰 버선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혜온은 더듬더듬 배를 안았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제 몸을 붙드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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