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미친 날 [단행본]

눈부시게 미친 날

원치 않는 선 자리.
설상가상 그 자리에 나온 남자는 10년 전 헤어졌던 그 남자다.
“여긴 왜 나왔어요? 우리, 다시 볼 일 없을 텐데.”
“네가 여기 있으니까.”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이미 끝났어요. 난 깡그리 싸그리 다 잊었다고요. 아니, 잊었다는 것조차 잊었어요. 사는 게 바빠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진득한 눈빛이 나를 좇는다.
“거짓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키가 만든 그늘이 내 머리 위를 덮는다.
“잊었다면 좋아. 내가 다 기억나게 해주지.”
그가 덥석 내 손목을 잡았다. 그 온기가 척추를 타고 전류 흐르듯 빠르게 온몸을 관통한다.
“뭐부터 기억나게 해줄까? 말만 해. 차주온부터 할까?”
차주온.
그 이름이 쐐기처럼 내 몸을 관통한다.
그런 날이 있었다.
너라는 존재만으로 세상이 눈이 부시던.
너로 인해 눈부시게 미쳤던 날들.
사람들은 첫사랑이라 부르지만, 난 끝 사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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