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말 드라마 속 절친들은 모든 정보에 빠삭할까? 왜 항상 주인공을 위해 헌신할까? 주말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여자 주인공의 절친 포지션을 맡게 된 보영, 막장 에피소드를 해결하며 드라마의 엔딩을 만들어내는데.“아줌마들이 보는 드라마가요, 참 그런 게 있어요. 내용 전개가 말이 되냐 안 되냐를 떠나서 사람을 열받게 만들어요.”“네?”“그래서 다음 편이 궁금해서라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웬만한 주말 드라마는 다 정주행했다고 보시면 돼요.”현실적인 여자의 막장 드라마 탈출기.ㅡㅡㅡㅡㅡㅡㅡㅡ“저기, 보영아.”따뜻한 저녁 봄바람이 여주의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눈을 살풋 접으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그녀가 여자 주인공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왜 불러.”“아니... 그냥, 고맙다구.”“뭐가.”귀신이 아니니까 비위를 덜 맞춰도 된다는 생각에 말이 짧게 튀어나왔다. 사실 귀찮았다.“아까 네가 아빠한테 한 말. 물론 우리 부모님도 고생하시지만… 나도 고생하면서 돈도 벌고 일자리도 구하는데, 그걸 네가 알아주니까 너무 고마운 거 있지?”“흠.”“그러면서도 너한테 고마워하는 내가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나여주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처연하게 말했다. 아니다, 내 눈에만 처연해 보이는 건가? 아, 이게 바로 여주 버프.“이기적일 게 뭐가 있냐? 너 알바하는 거 뻔히 아시면서 취업에 올인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게 이상한 거야.”나여주는 더없이 청순했고, 그래서 더 애처로워 보였다.“다음부터는 너도 쌓아 놓지 말고 말해.”“말했는데도 몰라주시면 어떡해?”“그러면 우리 아빠는 아직 이 정도까지는 이해를 못 해주시는구나, 하고 네 인생 살아 버려.”여주는 크고 검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며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길, 쓸데없이 사랑스러웠다.“제일 최악인 건 뭔지 알아? 말하면 알아주실 분이었는데, 그걸 영영 모르고 나 혼자 끙끙 앓는 거야.”아빠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남자친구와 안전하지 않은 이별을 한 후, 부모님의 반응을 걱정만 하면서 나 혼자 끙끙대고 앓은 적이 있었다. 막상 말하고 나니, 나는 오래전부터 혼자가 아니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너는 가짜 세상 속의 가짜 인물이지만, 그래도 너에게 네 부모는 진짜이겠지.’ “내가 네 마음 알아줘서 고맙다고 했지? 다음부터는 너희 부모님한테 네 마음을 직접 이야기해 봐.”‘그리고 나는 빨리 너의 사랑을 찾아서 이 세상을 뜰 거야.’ 여주는 내가 삼킨 뒷말을 짐작도 하지 못하고 헤헤 웃었다.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 것이, 꽤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양손을 머리 위로 붕붕 흔들었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제왕 그룹의 로고가 번쩍거리는 게 사방에서 잘 보였다. ‘제왕 그룹이라, 가만있어 보자.’인터넷에서 제왕 그룹을 검색하자 기사들이 맨 위에 떴다. <제왕 그룹 후계자는 누구? 젊은 천재 제왕으로 돌아오다.><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제왕 후계자의 이마 둘레.><제왕 후계자, ‘찍지 마세요~’>스크롤을 넘겨보니, 제왕 그룹은 굴지의 대기업이고, 최근에 후계 구도가 드러난 모양이었다. 유일무이한 젊은 후계자, 회사를 물려받으러 온 젊은 남자라….그렇다면 이놈이 높은 확률로 남자 주인공이 아닐까? 최소한 남자 주인공 후보라도 될 것 같다. 아쉽게도 얼굴이 드러나 있는 사진은 없었다.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저기요 휴대폰님? 산신령님? 조상님?”(….)“하이 핸드폰?”(….)“핸드폰님?”(….)“저, 저기요?”(….)“남.자.주.인.공. 알.려.줘.”남자 주인공에 대해서도 건질 게 있나 싶었는데 휴대폰은 짜증나게 잠잠했다. “그냥 원래 세상으로 보내 줘. 내 인생 돌려 달라고!!”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빽빽 질렀다. 이곳에 와서 욕도 늘고 화도 늘어 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아챘다.깜짝 놀라 뒤돌자 선명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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