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내가 겨우 네 몸뚱이 하나 얻자고 이 개짓거리를 했을까.”우진혁의 시선이 병상에 누운 재민을 향했다.그는 진혁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이자 떠난 아기의 죽음을 밝혀줄 유일한 증거였다.“대체 왜이래? 우리 계약은 끝났잖아.”“혼인신고 안 했던데. 그럼, 저 산송장이나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뜻 아닌가.”“아니. 너랑은 다르지. 재민 씨와는 미래가 있었어.”매서운 시선이 이목구비를 지나 서서히 전신을 조여왔다. 압사당할 것 같은 눈길에 점점 숨이 말랐다.수 개월간의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담담한 척 물었다.“잘까? 자주면 다신 안 찾아올래?”머리 위로 높다란 그림자가 생겨났다.블랙 슈트를 입은 몸이 가까워질수록 버거운 열기가 영에게로 쏟아졌다. “지난 10개월간 어떻게 해야 네 인생을 망칠 수 있을까. 머리에 쥐가 나게 고민을 했거든.”“….”“방법이 딱 하나 있더라고.”우진혁이 기다란 검지를 뻗어 그의 턱 아래로 가져다 댔다. “나.”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정의 내렸다.언젠가는 친구였던 너를. 어느 날은 죽이고 싶게 미웠던 너를.미워하는 게 힘들어 기어코 사랑해 버렸던 너를. 나는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멍하니 쳐다만 보자 그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혼인신고서와 새빨간 인주를 앞으로 내밀고는 미친 소리를 했다.“영아. 우리의 새로운 계약서야.”아, 파멸의 끝에 다다라서야 너를 정의할 말이 떠올랐다.너는 나의 거지같은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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