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던 자리> 간다고 말이라도 좀 해 주고 가지.
“신세를 졌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첫 만남, 그때 그를 돕지 않았더라면.
“이런 곤란한 때만 만나네. 오늘도 고마웠소.”
두 번째 만남, 그저 우연히 꾼 꿈같이 금세 잊어 갔더라면.
“별로 안 반가운 모양이네. 난 반가운데.”
그리고 또 위험한 순간에 만난 위험한 그 남자.
잔잔한 샘일 줄 알았던 그녀의 삶은
사실 쉼 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품고 있었다.
▶ 잠깐 맛보기
“절…… 아세요?”
그녀의 말에 남자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목 아래로 끌어내렸다. 곧게 선 콧대와 반듯한 입매, 조각같이 날렵한 턱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까지도 소하는 죽음의 공포에 반쯤 정신이 나가서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옥패를 준 그 남자가 방금 전 저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이 냉혈한 같은 남자와 동일 인물이라고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이걸 떨어뜨렸어.”
그는 소하의 눈앞에 옥패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 소하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옥패와 남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당신!”
이제야 누군지 떠올라서 그녀의 눈이 놀라움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소하는 긴장이 갑자기 풀어져서 그 자리에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어째서 당신이 또 여기에 있는 거예요?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별로 안 반가운 모양이네. 난 반가운데.”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반가울 리가 없잖아요!”
윤영은 잘생긴 한쪽 입술을 근사하게 말아 올리며 그녀를 보고 소리 내어 웃었다. 소하는 이런 대략 난감한 상황에서도 그의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시퍼런 칼날이 제 목을 향해 내려오던 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심장은 다른 이유로 쿵쾅거렸다.
심장아, 그만 나대. 왜 이렇게 줏대도 없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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