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붉은 바람이 불어오는 황야의 저택에서 시작되었다.
신경질적인 고성과 단절된 소통이 오랫동안 고요히 가라앉은 곳.
몰락 귀족의 딸 제인 그레이가 비참한 모습으로 저택에 당도했을 무렵,
회색 눈의 아름다운 남자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 * *
왕가의 핏줄을 이은 완벽한 푸른 피라 불리는 키어런 레번하트.
누구보다 오만한 남자의 뜻을 거스를 이는 아무도 없었다.
후원을 받겠다며 더부살이를 하러 온 여자애.
오로지 제인만이 그의 뜻에 반하며 고개를 빳빳이 했다
불합리함에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상냥한 눈을 하고.
‘몸가짐도 다소곳하니 어디 내놔도 뒷말은 없을 것 같지? 혼인 시장 말이야.’
어디로 팔려 갈지, 누구에게 잡아먹힐지, 한 치 앞의 운명도 모르면서
여동생 사라에게만 곱게 웃어 주는 얄미운 계집애.
제 얄팍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키어런은
황야에서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얻었던 열병의 이름을 아직 알지 못했다.
“지금…… 주제넘게 나에게 충고를 한 거야?”
“충고하는 데 주제가 필요한 줄은 몰랐네요.
이런 식으로 당신을 위하는 사람들을 내치면, 결국 혼자 남게 될 거예요.”
키어런은 뜻대로 거머쥐지 못한 것이 없었다.
제 의지를 실패한 적도, 불가능을 체감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제인만이.
그의 인생에 쥐지 못한 유일한 열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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