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있던 모양이었다.
위에서 떨어진 그녀의 온몸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페일은 의식을 찾자마자 느껴지는 끔찍한 한기가 괴로웠다.
실낱같은 신음이 겨우 열린 입술 사이로 새어나갔다.
“하..”
순간 바닥에 있던 피에 젖은 페일의 몸이 불쑥 들어 올려졌다.
자신과 똑같이 차갑게 젖은 타인의 살갗이 느껴진다.
맞닿은 잔뜩 긴장한 몸과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도.
“잘했어. 의식 잃지 마.”
“아으..”
누구야?
굳은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파들거리는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자, 빗물에 푹 젖어 흐릿한 시야 사이로 그가 보였다.
“아이, 오..”
흠뻑 젖은 금발이 엉망인 그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런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티오..’
그게 페일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사람들은 그랬다.
업보가 있다고.
나쁜 사람들은 꼭 벌을 받는다고.
“쿨럭-”
신이시여 알려주세요.
‘그들은 벌을 받나요?’
***
고요함은 사라졌다.
설핏 떠진 눈 사이로 아리도록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 송곳으로 마구 찌르는 것 같았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막내 로제 아가씨께서 눈을 뜨셨어!!”
로제 블레앙.
그렇게 나는 나를 죽인 그들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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