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인 줄 몰랐다.
그래서 도망쳤다.
거짓이라 자부했던 감정이 진심이 되기 전에.
“세상이 멸망해도 널 사랑할 거야. 그러니까, 날 혼자 두지 마. 날 포기하지 마.”
자꾸만 그녀를 흔드는 잿빛 눈동자를 외면했다.
“널 만지고 싶어. 널 안고 싶고, 느끼고 싶어. 내가 잘못된 거야?”
“이러지 마세요.”
“네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제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흐느껴 우는 남자의 애정을 방관했다.
왜냐고? 당사자도 모르게 마음속에 스며든 발칙한 남자는 내 아버지가 죽인 피해자의 아들이었으니까.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접근, 불순한 과정을 통해 축적된 애정.
쌓이고 쌓인 거짓과 기만이 목을 조여오는 순간, 라희는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렸다.
그녀의 잘못된 판단이, 그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아득한 집착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모르고.
그래봤자, 어차피 돌고 돌아 사랑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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