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 잘하잖아.”
“…….”
“엿 먹이는 것도 잘하고.”
잔뜩 비아냥거리면서도 저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혁준의 뺨에 손을 올렸다. 둘은 눈길로 서로를 붙들었다. 자기 뺨에 닿은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 듯이 느릿하게 눈을 감은 혁준이 말을 내뱉었다.
“그 재수 없었던 날이 아직도 꿈에 나와. 내가 수술대에 오르고 눈을 뜰 때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너는 죽어도 모르겠지.”
그가 눈을 뜨자 주황빛을 띠는 동공이 탁하게 물들었다. 그녀는 혁준의 뺨에 올린 손을 거두며 침묵했다.
4년 전에는 그가 다시 세상을 보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혁준의 멀쩡한 눈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와 다시는 얽히고 싶지도 않았고 사진마저도 보고 싶지 않았다.
“넌 네가 밉다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하는구나. 예전에는 귀엽게 대들기라도 했는데 이젠 그러지도 않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이젠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난 널 놓지 않을 거거든.”
짙은 소유욕에 예서는 입술을 들썩이다가 다물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애정을 갈구하듯이 나를 보지 말란 말이야.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이상 우리 관계에 진전은 없을 것이다.
이건 그를 이용하려는 것일 뿐.
동생이 죽은 이후로 높은 낭떠러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발을 삐끗해도 그대로 추락할 것 같은 나약한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견디며 악착같이 버텨 살아가고 있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예서야.”
그의 세상과 제 세상은 너무나 다르니까.
“네가 앞도 못 보는 나를 버리고 간 날을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머저리처럼 믿고 기다렸잖아.”
서늘한 음성에 예서는 숨을 죽였다. 목에서 느껴지는 숨결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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