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게 연애는 아니니, 미리 합의를 좀 합시다.”
아이를 빨리 낳자 말하던 서도혁은 단정하고 깔끔했다.
결혼이 아니라 계약을 하러 온 사람처럼.
그는 남편이라기보다 정중한 타인 같아 보였다.
“그래도, 쓰레기는 안 될게.”
어쩌면 그 말을 믿었던 것일까.
드문드문 이어지던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을 기대다 보니
그와의 밤 역시 다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러기 쉽지 않은데. 민연주 씨 남자에 꽤 소질 있어요.”
그는 연주에게 지독한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온기쁨이었던 배 속의 아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
“안 하고 싶어요. 싫어요.”
“늘.”
“…….”
“싫다면서.”
서도혁이 작게 웃었다.
“결국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연주가 고개를 저었다.
“뭐든 반대로 말하는 여자이니.”
“…….”
“그 말을 어떻게 믿을까.”
연주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
그리고 3개월간 내내 생각했던 말을 입 밖으로 뱉었다.
"우리, 이혼해요. 다 끝났잖아요."
그런데 남자가 웃는다.
"연주야"
겨우 그런 말이냐는 듯
"임신은 다시 하면 돼"
깔끔한 무시였다.
***
단 한순간이라도 내게 진심인 적이 있었을까?
장난감 취급 당하는 것도 모르고
바보 같이 다 내줘버린 마음이 끝내 길을 잃었다.
그러니 딱 한 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도 당신을 기만하기로 한다.
나 역시 당신에게 상처를 안겨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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